홍성태(이하 생략):제 주변에서야 엘지생건의 성과를 부러워하고 부회장님에 대해 궁금해하죠. 그런데 제가 2030 청년들 가르치는 일을 하잖아요. 그 친구들은 부회장님도 잘 모르고, 엘지생건을 치약 파는 회사 정도로나 알지 잘 몰라요.
차석용 부회장(이하 생략):
궁극적으로는 내실이 있어야 하고, 내실이 있어서 오래 가면 알리지 않아도 스미듯 알려지게 되죠. 개인적으로도 저는 알려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고, 지금 갖고 있는 자유가 너무 좋아요.
Q.우리 구성원들에게 전문성 키우라는 말씀 많이 하시잖아요. 전문성이 어떻게 키워져요?
P&G에서는 (생략)회사 안에서 절대로 비굴하게 하지 않습니다. 비굴하게 구는 건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한 겁니다. 언짢은 이야기를 들어도 꾹 참고, 비리를 봐도 꾹 참고 '나는 못 봤다' 이러는 건데, P&G에서는 봤으면 봤다고 하고 나는 나간다고 하고 나가요. 저는 엘지생건도 그런 회사가 되면 좋겠어서 구성원들이 배울 수 있는 대로 많이 배우면 좋겠어요.
Q.엘지생건은 직원들이 6시에 퇴근하는 게 일찍이 습관화되어 있던데, 퇴근 후에 임직원들이 뭘 하기를 바라세요? 내 취미 살리고 놀고 편하게 지내면 시간이 흐지부지되잖아요.
우리 회사의 제품 대부분은 이런 예술가적 안목이 매우 중요해요. 이런 안목을 키우기 위해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 회사 밖에서 창의적인 시간을 가지라는 겁니다. 회사에서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과 씨름한다고 해서 이런 안목이 생기지는 않겠죠.
:)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내야한다. 비어있는 공간에서 새로운 것이 나온다 - 창근
Q.막연한 질문 할게요. 마케팅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뭘까요.
제 보스가 이야기해준 건데요.많이 팔고 돈 많이 버는 게 마케팅이라는 겁니다.그래서 P&G에서는 마케팅에서 상 받아오지 말라고 해요. 상 안 받아와도 좋으니까 물건 많이 팔라고요.
조용히 엄청나게 많이 팔리는 광고가 있는가 하면, 광고가 멋져서 미디어에 많이 오르고 상까지 받았는데 제품은 안 팔리는 광고가 있습니다. 그런 마케팅은 빵점짜리라고 생각합니다. 비결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매출이 나고, 이익이 올라가는 마케터가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회사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Q.언젠가 강의하실 때,마케팅이 차별화 게임이라고 하신 기억이 납니다.
그때말씀드린 것이 'different, better, special'이었죠.
기존의 것과 달라야(different) 하는 건 분명합니다. 다른 건 사람들이 항상 신선하게 보니까. 넥타이도 두꺼워졌다 얇아졌다가 바지통도 넓어졌다 좁아졌다가 치마 길이도 길어졌다 짧아졌다가, 다른 것들을 추구해야 팔리거든요. 사람들 눈에 달라야 하고.
그런데 다르다고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다르면서 더 좋아야(better) 하겠죠. 기존 것보다 좋아야 하거든요. 이 두 가지는 필수요소인 것 같아요. 사업을 하는 데 기존 제품과 뭐가 다르냐, 기존 제품보다 더 좋으냐 이런 것들은 기본이죠.
그러다 이제 특별한(special) 관계로 엮이는 거죠. 다르지도 않고 낫지도 않지만 내 배우자이고 내 애인이니까, 즉 특별하니까 계속 같이 사는 것과 같죠. '후' 같은 브랜드가 다른 화장품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2조 원 매출*이 나는 건 아닐 겁니다. 스페셜한 관계로 묶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걸 자꾸 쓰면서 거기에 익숙해지는 거죠. 그러다 보면 이것이 나의 화장품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겠죠.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브랜드 파워가 되는 것이고요.
:) 기본에 특별한 관계, 즉 브랜드.
Q.벤치마킹하고 싶은 회사가 있으신가요?
화장품 회사 중에서 로레알이나 에스티로더 같은 곳은 굉장히 벤치마크하고 싶어요. 그런 회사들은 오래되고 굉장히 잘되는 회사인데도 계속 새로운 것들을 낼 수 있는 능력을 잘 갖추고 있는 것 같아요.
오래된 회사나 잘되는 회사들은 대개 배부른 돼지가 되잖아요. 그래서 스티브 잡스가 'stay hungry'라고 이야기했죠. 'stay foolish'도 크게 공감하는데, 자기가 많이 안다고 생각하면 그다음부터 교만해지기 시작합니다.자기가 아직도 모른다고 생각해야 하고, 또한 여전히 배고프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회사가 100년 넘게 저렇게 최고의 위치에서 굉장히 좋은 성과를 내왔고, 그 직원들도 지금의 제품에 상당히 익숙할 텐데, 거기서 또 다르고 더 좋은 제품들을 계속 내는 것을 보면 깜짝깜짝 놀랍니다. 그런 데서 새로운 싹을 틔울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인지가 가장 궁금해요.
우리 회사도 가장 걱정인 게 뭐냐면 직원들이 어느 정도 위치에 가면 '우리가 경쟁사보다 낫다, 우리가 더 많이 안다, 나는 그렇게 배고프지 않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이에요. 그러면 배고픈 사람에게 지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큰 회사들이 새로움에 대한 배고픔과 갈증을 유지시키는지 궁금합니다. 아마서양식 사고방식으로 굉장히 차갑게 평가해서 'dead wood(죽은 가지)'를 쳐내며 새순을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이 있는데, 한국은 그런 기업문화는 아니거든요.